
계좌가 며칠 사이에 쑥 빠질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좋은 기업 골랐는데 왜 이러지?' 저도 미국 주식을 10년 가까이 하면서 그 생각을 수백 번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월가에서 꽤 오랫동안 성과를 낸 투자자 폴 튜더 존스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기업의 질보다 시장 전체의 수급 구조가 주가를 지배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다시 실감했습니다. 연말은 상승 여력이 있지만 2027년부터는 구조적으로 다른 환경이 온다는 경고, 근거가 제법 묵직했습니다.
연말까지는 괜찮다는 전망, 그 배경
미국 증시가 10월 들어 흔들릴 때 저는 솔직히 좀 불안했습니다. 빅테크 주식을 꽤 비중 있게 들고 있었는데, 손에 쥔 걸 털어야 하나 싶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 시기에 폴 튜더 존스가 내놓은 진단은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지금의 조정은 오히려 매수 기회이고, 중간 선거라는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연말까지 강한 랠리가 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변동성 지수(VIX)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VIX란 옵션 시장의 가격 변동을 기반으로 투자자들이 향후 30일간의 시장 불안을 어떻게 전망하는지를 수치화한 지표로, 흔히 '공포 지수'라고도 불립니다. VIX가 급등 후 피크를 찍고 내려오기 시작할 때가 증시 저점과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는 건, 제가 몇 번의 조정 장세를 직접 겪으면서 몸으로 배운 패턴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자사주 매입(Buyback)의 역할입니다. 자사주 매입이란 기업이 시장에 유통 중인 자기 회사 주식을 직접 사들이는 행위로, 이 과정에서 유통 주식 수가 줄어 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올해까지는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이어 가고 있어, 조정 시마다 저가 매수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실적 시즌 전후로 시장이 빠지면 어느새 다시 올라오는 패턴, 이 힘이 상당 부분 여기서 나옵니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이 구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출처: 연방준비은행 세인트루이스 FRED).
2027년 수급 환경이 바뀌는 이유
이번 인터뷰에서 제가 가장 무겁게 받아들인 부분이 바로 이 수급 붕괴 시나리오였습니다. 수급이라는 말이 좀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데, 주식 시장에서 수급이란 시장에 나와 있는 주식의 공급량과 그걸 사려는 수요가 얼마나 균형을 이루는지를 뜻합니다. 간단히 말해 살 사람보다 팔 물건이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지난 20년간 미국 증시가 조정을 받아도 비교적 빠르게 회복한 데는 이 수급 구조가 유리하게 작동했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빅테크의 자사주 매입으로 유통 주식 수가 줄고, 인수합병(M&A)으로 상장 기업 수 자체도 감소했습니다. 투자자 수는 그대로인데 투자할 수 있는 주식 종류와 수량이 줄어드니 희소성이 생기고 가격이 오른 겁니다.
그런데 2027년부터는 이 구도가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는 게 핵심 경고입니다. 스페이스X, 오픈AI, 앤스로픽 같은 대형 AI 기업들의 IPO(기업공개)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IPO란 비상장 기업이 처음으로 주식 시장에 상장해 일반 투자자에게 주식을 공개 매도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에 보호예수 해제 물량까지 더해집니다. 보호예수 해제란 IPO 이후 일정 기간 동안 매도가 금지됐던 내부자 물량이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되는 시점을 말합니다. 임직원 성과급 주식, 초기 투자자 지분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구조입니다.
이번 공급 물량이 특히 우려되는 이유
제가 직접 수치를 보고 꽤 놀랐던 대목이 있습니다. 미국 증시에 지난 45년간 상장된 모든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이번에 상장을 앞둔 몇 개 AI 기업의 시가총액 합산치가 더 크다는 비교였습니다. 물론 시장 환경과 화폐 가치가 다르니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역대급 규모의 공급 물량이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출처: 미국 SEC EDGAR).
AI 기업들은 사업 확장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유상증자와 채권 발행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유상증자란 기업이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주식 수가 늘어나 지분이 희석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장을 받쳐 주던 자사주 매입의 힘이 줄어드는 동시에, 반대 방향의 공급 압력이 세지는 구도입니다.
- 스페이스X, 오픈AI, 앤스로픽의 대형 IPO 예정
- IPO 후 6개월~1년 뒤 보호예수 해제로 내부자 물량 대거 출회
- AI 설비 투자 확대로 빅테크의 유상증자·채권 발행 증가
- 자사주 매입 규모 축소로 기존 저가 매수 지지선 약화
실전 투자자로서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전망은 전망일 뿐이라고 늘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어떤 전문가의 전망을 그대로 따라 베팅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시나리오도 '이렇게 될 것이다'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런 방향의 리스크가 있구나'라는 쪽으로 활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수급 환경 악화 가능성을 인지했다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연말 랠리가 나온다면 보유 비중을 일부 조절해 현금 비중을 높여 두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시장이 좋을 때 수익 실현을 못 하고 질질 끌다가 조정 때 파는 건 저도 반복해 온 실수입니다. 분할 매수·분할 매도 원칙은 알면서도 지키기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원칙이 빛을 발합니다.
두 번째는 자산 배분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자산 배분이란 주식, 채권, 현금, 대체 자산 등 다양한 투자 자산을 일정 비율로 나눠 담아 특정 자산의 급락이 전체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는 전략입니다. AI 인프라 주식에 비중이 집중되어 있다면 수급 충격이 왔을 때 회복 속도가 느려질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엔 연금 계좌를 지수 추종 ETF로 꾸준히 채우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는데, 폭락 구간이 오면 오히려 분할 매수 기회로 삼는 게 정신 건강에도 더 낫더라고요.
AI 사고 리스크나 정부 규제 이슈처럼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꼬리 위험(tail risk)에 대해서는 솔직히 지나치게 무겁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특정 섹터에 극단적으로 집중된 포지션은 언제든 예상 밖의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폴 튜더 존스는 정확히 어떤 사람인가요?
A. 폴 튜더 존스는 1980년대부터 활동한 미국의 헤지펀드 매니저로, 1987년 블랙먼데이 당시 시장 하락을 예측해 큰 수익을 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손실 방어와 거시 경제 흐름 분석에 강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매크로 투자자(macro trader)로 분류됩니다. 모든 전망이 맞는 건 아니지만, 근거 있는 시각을 제시해 참고할 만한 인물로 꼽힙니다.
Q. 보호예수 해제가 주가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나요?
A.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예수 해제란 IPO 이후 내부자가 주식을 팔 수 없도록 묶어 둔 기간이 끝나는 시점으로, 이 시기가 다가오면 대량 매도 우려로 주가가 미리 조정을 받는 패턴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만 기업 실적이 좋고 기관 수요가 강하면 물량이 흡수되기도 하므로, 해제 자체가 반드시 폭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Q. 지금 미국 주식을 전부 팔아야 하나요?
A. 전부 매도는 대부분의 경우 과한 대응입니다. 전망은 근거가 있어도 시점과 강도까지 맞추기 어렵고, 자칫 상승 구간을 통째로 놓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접근은 현금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자산 배분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연말 랠리 구간이 온다면 그 흐름에서 일부 수익을 실현하고 여유 현금을 확보해 두는 전략이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Q. 오픈AI나 앤스로픽 IPO에 투자해도 될까요?
A. 성장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지만, 대형 IPO는 상장 직후 내부자 매도 압력과 높은 밸류에이션이 동시에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대형 IPO들이 상장 초기 고점 대비 크게 빠졌다가 회복하는 패턴을 보인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상장 직후보다는 보호예수 해제 이후 일정 기간 주가 흐름을 확인한 뒤 분할 진입하는 방식이 리스크를 줄이는 데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결론
결국 제가 이번 내용에서 건진 것은 하나입니다. 기업이 좋다는 것과 주식이 오른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장 전체의 수급 구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공급 물량이 얼마나 쏟아질지를 함께 봐야 한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연말 랠리에 대한 기대는 가져 가되, 2027년 이후를 대비한 포트폴리오 정리를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준비라고 판단합니다.
제 경우엔 당장 포지션을 크게 바꾸기보다 연말 랠리 구간에서 AI 인프라 비중을 일부 줄이고, 연금 계좌의 지수 ETF 비중을 조금 더 높여 가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나쁠 때 흔들리지 않으려면 좋을 때 준비를 해 둬야 한다는 걸, 손실을 겪으면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