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해외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나서 정작 매수 버튼을 누르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 증시는 이미 너무 올라서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유럽, 일본, 중국 시장의 기업 이익 성장률과 시가총액 데이터를 뽑아 비교해 봤는데,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더 복잡한 질문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미국이 비싸다는 건 알겠는데,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대안 시장을 직접 뜯어봤을 때 마주한 현실
유럽 시장부터 살펴봤습니다. 지난 10년간 유럽 기업들의 평균 이익 성장률은 연 2~3%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의 이익 성장률이 연평균 9%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차가 상당합니다. 유럽을 대표하는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시가총액이 약 7천억 달러 규모인 반면, 엔비디아는 4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ASML이 세계 최고 수준의 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면서도 기업 가치에서는 6분의 1도 안 된다는 사실이 꽤 낯선 느낌을 줬습니다.
여기서 EUV란 극자외선(Extreme Ultraviolet) 리소그래피 기술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반도체 회로를 나노미터 단위로 새기기 위한 핵심 공정 장비입니다. 기술력만 보면 세계 최고이지만, 그 기술을 발판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플랫폼 기업을 키워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유럽에는 있습니다. 엄격한 규제 환경이 혁신 스타트업의 성장 속도를 제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은 좀 달랐습니다. 1989년 버블 붕괴 이후 30년 넘게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던 닛케이 지수가 최근 부활한 배경을 들여다보면,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사들에게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을 압박하고,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바꾼 결과입니다. 여기서 ROE란 기업이 주주 자본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돈을 맡겼을 때 그 돈이 얼마나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일본의 회복은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를 수입한 결과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중국은 성장 자체는 폭발적이었지만, 제가 자료를 분석하면서 가장 걸렸던 지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2020년 앤트 그룹의 홍콩·상하이 동시 상장이 공모 직전 하루 만에 전면 취소된 사례입니다. 당시 예정된 공모 규모는 약 370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였는데, 정부 개입 한 번으로 순식간에 없던 일이 됐습니다. 기업의 운명이 시장 논리가 아니라 정책 결정자의 판단에 달려 있는 구조에서, 장기 투자자가 감내해야 할 불확실성의 종류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 유럽: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나, 플랫폼 기업으로의 성장 생태계가 약하고 규제가 혁신 속도를 제한
- 일본: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ROE 개선, 자사주 매입) 도입으로 증시 회복에 성공했으나 구조 변화의 지속성은 미지수
- 중국: 폭발적 성장 잠재력에도 정부 개입 리스크가 투자 예측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훼손
그럼에도 자본이 미국으로 향하는 구조적 이유
미국 증시가 비싸다는 건 데이터로도 확인됩니다. 현재 전 세계 주식 시장 총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이 미국 한 나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분석에 따르면 2026년 기준 미국 증시 규모는 상위 9개국 증시를 합산한 것보다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출처: IMF 세계경제전망). 엔비디아, TSMC 같은 반도체 기업 몇 개의 시가총액만 더해도 미국을 제외한 전체 국가의 증시 규모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이 집중 현상이 단순한 쏠림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펀더멘털에 있습니다. 여기서 펀더멘털이란 기업의 매출, 이익, 부채 구조 등 실질적인 재무 건전성을 뜻하는데, 미국 상장 기업의 평균 순이익률은 13% 이상, 투자 대비 수익률(ROI)은 20%를 웃돌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개별 기업의 실적 발표 자료를 분석해 본 적이 있는데, 단순히 주가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고평가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습니다.
혁신 생태계의 구조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 벤처캐피털(VC) 투자금의 약 70%가 미국으로 유입됩니다. 여기서 벤처캐피털이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초기 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지분을 취득하는 투자 형태를 말합니다. 미국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의 59%가 이민자 창업자에 의해 설립됐다는 수치는(출처: National Foundation for American Policy), 미국이 자국민보다 더 넓은 인재 풀을 활용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위기 때의 반응도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그리고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마다 전 세계 자금은 미국 국채와 달러로 몰렸습니다. 2011년 S&P가 미국 신용 등급을 강등했을 때도 역설적으로 미국 국채 금리는 하락하고 달러 가치는 상승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60%가 달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제 무역 결제의 절반 이상이 달러로 이루어집니다. 이 신뢰는 어떤 특정 정권이나 정책이 만든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제도적 기반에서 나온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솔직히 한 가지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고친다'는 논리가 설득력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논리가 자칫 '미국은 언제나 안전하다'는 확증편향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빅테크 쏠림 현상이나 AI 거품 경고는 위험 요소를 인정하는 것처럼 언급되지만, 결론이 항상 '그래도 미국뿐이다'로 귀결된다면 위험 요소를 실질적으로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과거 위기 때마다 자금이 미국으로 몰렸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국 증시가 이미 많이 올랐는데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A. '비싸다'는 인상과 '고평가됐다'는 판단은 다릅니다. 미국 기업의 평균 순이익률이 13%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가 수준만으로 위험하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개인의 투자 시점과 목적에 따라 판단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 들어가도 되나'라는 질문보다는 '어떤 구조로 분산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게 더 실용적이라고 봅니다.
Q. 유럽이나 일본 주식에 분산투자하는 건 의미가 없나요?
A.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기대하는 역할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증시는 엔화 환율 효과와 배당 증가 흐름에서 기회가 있고, 유럽도 특정 섹터에서는 경쟁력을 유지합니다. '미국 외에 대안이 없다'는 시각도 있지만, 분산투자 관점에서 다른 시장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Q.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가능성은 없나요?
A. 단기적으로는 가능성이 낮다는 게 현재 주류 시각입니다.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60%가 달러이고, 무역 결제의 절반 이상이 달러로 이루어지는 구조는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런 구조 자체가 영구적이라는 보장은 없으며, 달러 패권의 변화 가능성을 장기 시나리오 중 하나로 열어두는 게 균형 잡힌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Q. 중국 주식은 지금 완전히 배제해야 하나요?
A. 중국 시장의 성장 잠재력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정부 개입으로 인해 기업 리스크가 재무 분석만으로는 예측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크다'는 점에서, 투자한다면 비중과 출구 전략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직접 대안 시장 데이터를 비교해 보고 내린 결론은 단순합니다. 미국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 장기 자본을 맡길 구조적 조건을 가장 잘 갖춘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펀더멘털, 혁신 생태계, 달러 기축통화 신뢰, 위기 시 자기 복원력은 다른 시장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그렇다고 '미국만 보면 된다'는 결론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빅테크 쏠림 현상과 AI 밸류에이션 부담은 실질적인 위험이고, 과거의 패턴이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투자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미국 시장을 중심축으로 삼되, 분산투자 관점에서 다른 시장의 변화를 계속 주시하는 태도가 지금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