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알림이 울릴 때마다 환율 앱을 먼저 열어보는 버릇이 생긴 게 벌써 몇 년 전 일입니다. 미중 관세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관련 소식이 뜰 때마다 원화 가치가 출렁이는 걸 직접 겪고 나서부터입니다. 이번 9월 미중 정상회담 소식을 접했을 때도 습관처럼 환율 화면을 켰습니다. 결과는 "큰 합의 없음, 관세 휴전 연장." 그 한 줄이 시장에, 그리고 일본 외교에 얼마나 다른 무게로 떨어졌는지를 따라가 보니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UN 총회가 먼저 보여준 균열의 지도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 열린 제81차 UN 총회는, 솔직히 말해 회의 자체보다 회의장 밖 풍경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UN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개회 발언에서 "균열이 협곡이 되고 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외교 수사처럼 들릴 수 있지만, 바로 그날 벌어진 장면들이 그 말을 그대로 증명했습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연단에 오르자 수십 개국 대표단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네타냐후는 남은 참석자들을 향해 "아직 나가지 않은 도덕적 겁쟁이가 있다면 지금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장면 영상을 처음 봤을 때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회의장이 항의 퇴장과 맞불 발언으로 난장판이 되는 UN 총회라니, 일반적으로 UN은 최소한의 외교적 예의가 유지되는 공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뉴스를 오래 챙겨볼수록 그런 믿음이 점점 흔들립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법이 무너지면 정글의 법칙이 돌아온다"고 경고했고, 일본 총리는 "안정적 다극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은 UN을 향해 "착한 척하는 오만한 기생충 특권 집단"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유럽 쪽에서는 아예 "새로운 샌프란시스코의 순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샌프란시스코 모먼트(San Francisco Moment)'란 1945년 UN 창설 당시처럼 국제 질서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자는 뜻으로, 현재 안보리 체제가 사실상 작동 불능에 빠졌다는 인식을 전제합니다.
- UN 사무총장: "균열이 협곡이 되고 있다" — 분열의 시대 공식 선언
- 마크롱: 국제법 붕괴 시 약육강식 질서 회귀 경고
- 밀레이: UN을 "기생충 특권 집단"으로 규정, 새 판 요구
- 일본 총리: 안정적 다극 시대 종언 선언
외교적 고립 — 트럼프가 먼저 공군기지에 나간 이유
9월 23일부터 3일간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제가 가장 오래 멈춰 생각한 장면은 합의문이 아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 공군기지에 한 시간 먼저 나가 있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외국 정상을 백악관 밖에서 기다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언론들은 이런 선례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영국 총리를 맞이한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습니다(출처: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60년 넘게 없던 일이 벌어진 겁니다. 제가 직접 관련 보도들을 찾아봤는데,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너무 극진한 환대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게 이해가 됐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가시죠" 하며 먼저 길을 안내하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2017년 트럼프 1기 방중 때 오히려 시진핑이 환대하는 쪽이었고 트럼프는 손을 주머니에 꽂고 여유를 부렸다는 장면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미국이 B-2 스텔스 폭격기를 저공 비행시키며 기선을 제압하려 했지만 시진핑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트럼프는 시진핑을 향해 "위대한 지도자(Great Leader), 위대한 순간(Great Moment)"이라는 표현을 썼고, 시진핑은 "두 나라는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화답했습니다.
'팬더 외교(Panda Diplomacy)'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중국이 자이언트 판다를 타국에 장기 임대하는 방식으로 관계 개선 의지를 신호하는 외교 전략을 뜻합니다. 이번 방문 첫날 시진핑은 애틀란타 동물원에 판다 두 마리(핑핑, 푸상)를 임대 형식으로 보냈습니다. 공화당 내부에서 "굵직한 합의는 없고 판다 두 마리만 얻었냐"는 냉소가 나온 이유입니다.
동맹 균열 — "피와 불 속에서 다져진 우정"의 파장
이번 회담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저녁 만찬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두 정상이 나란히 앉아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던 순간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함께 일본에 맞서 싸운 사이"라고 말했고, 시진핑 주석은 즉각 "양국은 일본과의 전투에서 피와 불 속에 다져진 우정이 있다"고 화답했습니다.
제가 이 대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현재의 미일동맹(U.S.-Japan Alliance)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생각하면, 두 정상이 공개석상에서 일본을 공동의 역사적 적으로 호명한 셈이니까요. 미일동맹이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구축된 안보 협력 체계로, 현재 주일미군 약 5만 4천 명이 주둔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입니다(출처: 일본 외무성).
일본 다카이치 총리는 바로 직전 UN 총회에서 '적국 조항(Enemy State Clause)' 삭제를 주장했습니다. 적국 조항이란 2차 세계대전 당시 패전국들의 도발에 대응해 승전국이 안보리 승인 없이도 군사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 UN 헌장 53조·107조를 가리킵니다. 중국은 이 조항을 근거로 일본에 대한 군사 대응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 이 카드를 꺼낸 건, 타이밍상 미국에 보내는 신호였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열심히 신호를 보냈더니 두 정상이 일본을 공동의 역사적 상대로 언급한 겁니다. 일본 언론들은 "미중 정상회담이 중국의 대일 비판 선전장으로 이용됐다"고 보도했고, 다카이치 총리는 기자단 앞에서 "논평할 내용이 없다"고 짧게 답하며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의 미일 역학 관계상 실질적 항의가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팬더 외교의 속내 — 관세 휴전 연장이 진짜 성과인가
이번 회담의 공식 성과를 정리하면 사실 간단합니다. 11월까지였던 미중 관세 휴전(Trade War Truce)을 내년 1월까지 두 달 연장하는 것이 가장 구체적인 합의였습니다. 관세 휴전이란 양국이 상호 고관세 부과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협상을 이어가기로 한 잠정 합의를 말합니다.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연장만 하고 있다면 그게 정말 성과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정상회담에서는 무역 구조 개편이나 기술 규제 완화 같은 빅딜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번에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결과가 미국 쪽에 더 불리한 그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임 초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 관세를 100% 이상으로 올리며 빠른 승리를 장담했지만, 중국이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수출 통제로 맞대응하면서 협상 주도권이 흔들렸습니다. 희토류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방산 장비 등 첨단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17종 금속 원소군을 가리키며, 중국이 글로벌 공급량의 60% 이상을 통제합니다.
제가 평소 환율과 주가를 함께 체크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 휴전 연장 소식 직후 시장이 단기 안정세를 보인 건 사실입니다. 관세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신호 자체가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성과가 없다"고 단정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평가가 다소 성급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실질적인 구조 변화 없이 2개월짜리 봉합을 반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눈에 걸리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언론(CNN, MSNBC, Politico 등)의 백악관 출입을 제한하고 '트럼프 TV'라는 이름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출범한 것입니다. 그 덕에 이번 회담의 핵심 장면들 상당수가 생중계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그 채널에 들어가봤는데, 접속자가 수백 명 수준이었습니다. 주요 언론을 배제하면서도 그 공백을 채울 대안적 영향력을 확보했는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실질적인 합의가 있었나요?
A. 빅딜이라 부를 만한 합의는 없었습니다. 가장 구체적인 결과는 관세 휴전 기간을 11월에서 내년 1월로 두 달 연장한 것이었고, 이 외에 판다 두 마리 임대, 11월·12월 추가 회담 일정 확인 정도가 공개된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G2 정상회담은 큰 합의를 만들어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보기엔 이번 회담은 합의보다 관계의 온도를 보여주는 데 더 집중된 자리였습니다.
Q. 트럼프가 한 시간 일찍 공군기지에 나간 게 그렇게 이례적인 일인가요?
A. 네, 미국 언론들은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타국 정상을 백악관 밖, 그것도 공군기지에서 직접 기다리는 것은 관례상 없는 일입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과도한 환대라는 비판이 나왔고, 시진핑이 등장하자 트럼프가 직접 길을 안내하는 장면은 외교적 주도권 측면에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Q. UN 헌장 적국 조항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A. UN 헌장 53조와 107조에 규정된 조항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패전국(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이 도발 행위를 할 경우 안보리 사전 승인 없이도 승전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규정입니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지만, 중국은 필요할 때 이를 일본 견제 수단으로 거론해 왔습니다. 일본이 이번 UN 총회에서 삭제를 주장한 것도 이 맥락에서입니다.
Q. 미중 관계가 좋아지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요?
A. 미중 관계 개선이 무역과 환율 안정에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두 강대국이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조율하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 그 사이에서 한국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긴밀히 연결된 나라는 외교적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습니다. 일본이 이번 회담에서 소외된 장면이 저에게는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결론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따라가면서 제가 가장 강하게 든 생각은, 국제 외교가 원칙보다 관계와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는 현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이 또 있었나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2차 세계대전 역사를 꺼내 일본을 공동의 역사적 상대로 호명한 장면은, 동맹 관계도 강대국의 셈법 앞에서는 언제든 뒷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일반적으로 외교는 신뢰와 약속의 축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뉴스를 길게 봐올수록 그 신뢰도 결국 힘의 균형 위에 서 있다는 걸 느낍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구조적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풍자적으로 전달된 내용이더라도 팩트와 해석을 분리해서 읽고, 한쪽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매체를 비교하는 습관이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