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장난감 시장이 올해 상반기 6년 내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정작 성장을 이끈 건 아이들이 아니라 2030세대였다는 겁니다. 키덜트(Kidult) 현상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소비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읽히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성인 소비자가 장난감 시장의 큰손이 된 이유
제가 처음 이 데이터를 봤을 때 가장 눈에 띈 숫자는 포켓몬 카드 구매자 통계였습니다. 국내 기준으로 20대가 40.2%, 30대가 34.4%를 차지했습니다. 두 세대를 합치면 전체 구매의 4분의 3을 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포켓몬을 즐겼던 세대가 지금 그 카드를 다시 사고 있는 겁니다.
이 현상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키덜트(Kidult)입니다. 키덜트란 '키드(Kid)'와 '어덜트(Adult)'를 합친 신조어로,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즐기던 콘텐츠나 완구를 소비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단순히 취미 활동을 즐기는 것을 넘어, 이제는 시장 규모 자체를 바꾸는 소비층으로 부상한 겁니다.
포춘(Fortune) 기사에서 인용된 소비자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87%가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브랜드에 더 강한 애착을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제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사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건이 안 돼서 못 샀던 것들이 분명히 있었고, 지금은 그걸 직접 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만족감을 줍니다.
여기서 주목할 또 다른 특징은 구매 패턴입니다. 아이들용 장난감 소비는 크리스마스 시즌처럼 연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키덜트 소비자들은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연중 내내 꾸준히 구매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계절 편중 없이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트렌드를 주도하는 배경 중 하나로 IP 라이선스(IP License)가 있습니다. IP 라이선스란 게임, 만화, 영화 같은 원작 콘텐츠의 지식재산권을 활용해 굿즈나 카드, 피규어 등 파생 상품을 만드는 권리를 말합니다. 포켓몬, 마블, 스타워즈처럼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IP일수록 수집 수요가 높고, 가격 프리미엄도 붙습니다. 실제로 포켓몬 카드 한 장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사례도 낯설지 않게 됐습니다.
- 국내 포켓몬 카드 구매자 중 2030세대 비중: 74.6% (올해 기준)
- 미국 성인 소비자 조사: 밀레니얼의 66%가 키덜트 소비를 '자기 돌봄(Self-care)'이라고 응답
- 키덜트 소비의 핵심 동력: 어린 시절 향수, 즉각적 만족, IP 팬덤
해즈브로 실적으로 본 수집형 상품의 성장성
제가 해즈브로(Hasbro)라는 기업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원래 바비 인형의 경쟁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들여다보니 이미 체질이 상당히 달라진 회사였습니다.
현재 해즈브로 전체 매출의 약 70%는 카드 게임과 게임 관련 콘텐츠에서 나옵니다. 전통적인 아동 완구 비중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이 회사의 주가는 올해만 43% 올랐는데, 같은 기간 S&P 500 상위권과 견줄 만한 수준입니다. 단순히 장난감 회사라고 보기엔 이미 다른 업종에 가까워졌습니다.
그 핵심에 있는 게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입니다. 매직: 더 개더링은 1990년대 초 출시된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으로, 여기서 TCG란 카드를 수집하고 덱을 구성해 상대방과 대결하는 방식의 카드 게임을 말합니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수집과 전략, 커뮤니티가 결합된 구조라서 팬덤의 충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해즈브로 CEO는 이 카드 게임이 지난 1년간 장난감 및 게임 분야에서 1위로 올라섰으며, 이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세대적 구조 변화라고 직접 밝혔습니다(출처: Fortune).
마진 구조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전통 완구는 원자재 비용, 제조 원가, 물류비, 관세 등 고정 비용 부담이 큽니다. 반면 카드 게임은 상대적으로 원가가 낮으면서도 수집 가치와 희소성 덕분에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마진 구조라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해즈브로는 내년에도 신제품 출시를 공격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집형 상품의 힘은 '실물'이라는 데서도 나옵니다. 미국인 84%가 디지털 아이템보다 실물 소유가 더 만족스럽다고 응답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출처: Circana 소비자 조사),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스크린만 들여다보는 삶에서 손에 잡히는 실물 수집품이 주는 안도감, 생각보다 무시할 수 없는 심리적 요인입니다. 저도 주식 계좌 숫자를 보면서 '이게 진짜 내 돈인가'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 맥락에서 실물 굿즈에 끌리는 심리가 이해됩니다.
다만 맹목적인 낙관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블라인드 박스(Blind Box), 즉 열어보기 전까지 어떤 상품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랜덤 패키지 형태의 상품은 기대 심리와 희소성을 자극해 과도한 소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한정판 프리미엄이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고, 수집품의 시장 가치는 언제든 빠질 수 있습니다. 해즈브로의 성장세가 인상적이라 해서 무조건 투자로 연결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어떤 IP를 보유하고 있느냐, 그 팬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를 따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키덜트 소비가 일시적 유행인지 장기 트렌드인지 어떻게 구분하나요?
A. 구매 패턴을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됩니다. 일시적 유행은 특정 시즌이나 이슈에 반응하지만, 키덜트 소비는 연중 내내 꾸준히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해즈브로 CEO가 "세대적 구조 변화"라고 표현한 것도 이 지속성에 근거한 발언입니다. 단, 특정 IP나 콘텐츠의 인기는 얼마든지 식을 수 있으므로 시장 전체와 개별 IP를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Q. 포켓몬 카드 수집,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A. 취미로 즐기는 목적이라면 언제 시작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재테크나 시세 차익을 기대하고 접근하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포켓몬 30주년 효과로 올해 거래액이 급증했지만, 이런 기념 이벤트가 없는 해에도 같은 열기가 유지될지는 불확실합니다. 희소 카드일수록 가격 변동성도 큽니다.
Q. 해즈브로 말고 키덜트 트렌드 수혜를 받는 기업이 또 있나요?
A. 드래곤볼, 원피스 같은 강력한 IP를 보유한 일본의 반다이남코(Bandai Namco)가 대표적으로 언급됩니다. 국내에서는 K팝 아이돌 포토 카드 시장이 형성돼 있어 관련 굿즈 제작사나 팬덤 플랫폼도 수혜 범위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다만 마텔처럼 팬덤이 약한 IP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은 같은 트렌드에서도 소외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Q. 블라인드 박스가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말이 맞나요?
A. 구조적으로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블라인드 박스는 어떤 상품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랜덤 패키지 방식입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 심리 설계가 내재돼 있습니다. 즐거움을 위한 소비라면 문제없지만, 특정 희귀 아이템을 목표로 무한 반복 구매하는 경우엔 지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습니다.
결론
키덜트 시장의 부상은 단순히 "어른들이 장난감을 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비의 중심이 이동했고, 그 이동을 빠르게 읽고 사업 구조를 바꾼 기업이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해즈브로가 전통 완구 회사에서 수집형 카드 게임 중심의 고마진 사업자로 변모한 과정은 IP 경쟁력이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제가 이 트렌드를 보면서 느낀 건, 소비자 심리를 읽는 게 결국 투자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피로감, 어린 시절 향수, 즉각적 만족 욕구 같은 감정적 요인이 시장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강력한 팬덤과 IP를 가진 콘텐츠 기업들의 움직임을 계속 눈여겨보는 것이 유의미할 것 같습니다.